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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사진

광주호(비에 젖은 담장 아래, 능소화는...)

by 광주호 2025. 8. 3.

 


🌧️ 비가 내리는 이맘때

억수처럼 내리는 비.
거침없이 떨어지는 빗줄기 아래
문득 멈춰서게 되는 날이 있다.

그저 걷기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발걸음은 담벼락 앞에서 멈춘다.

그곳엔
잊고 지냈던 붉은 능소화가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선명하게 피어 있다.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능소화는 묵묵히 그 아래 고개를 떨군다.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누군가의 이름도, 시간도, 후회도 없이
그저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 능소화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그 여름,
능소화는 담장을 타고 오르며 세상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고요히 젖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계절이 바뀌어도
능소화는 말이 없었다.
다만 꽃잎 하나, 둘
천천히 떨어지며
무언가를 남긴 채 사라졌을 뿐.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떠오른다는 건
잊히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 아무 말 없이 마음을 적시는 날

어쩌면 지금 이 비도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해
무언가를 흐르게 하는 건 아닐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
피어 있다가 젖고, 젖었다가 스러지는 모든 것들.

비에 젖은 능소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시를, 오늘 따라 오래 바라본다.


 

“꽃은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가슴에 남았다”